► 5월 10일, 대전사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5월 10일 토요일. 대구에서 출발한 한 가족이 청송 주왕산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강 군(11). 목적지는 주왕산 안쪽에 있는 사찰 대전사였다.
절에 들른 뒤, 강 군은 기암교 앞에서 부모에게 말했다. “조금만 산에 올라갔다 올게.” 생수 한 병만 손에 쥔 채였다. 파란색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에 같은 팀 모자. 휴대전화는 없었다. 집에서부터 아예 안 가져왔다.
부모가 이걸 허락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작년에도 가족이 같은 코스를 왔었다. 강 군은 그때 주봉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도 힘들어서 중간에 내려왔다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한번 가봤으니 괜찮겠지"였다.
정오 무렵 혼자 산에 오른 아이는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 6시간 동안 아무도 몰랐다
강 군이 떠난 건 낮 12시쯤. 부모가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건 오후가 깊어지면서였다. 오후 4시 10분, 국립공원공단에 먼저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도 아이가 나타나지 않자 오후 5시 53분에 119에 실종 신고를 했다.
여기서 하나 짚어야 할 게 있다. 아이가 출발한 시각과 신고 시각 사이에 약 6시간의 공백이 있다. 이 시간 동안 아이는 산 어딘가에 있었고, 누구도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몰랐다.
CCTV에는 오전 11시 52분에 강 군이 어머니와 함께 주봉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후 강 군이 주봉 방향으로 올라가는 걸 목격한 등산객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목격 신고는 없었다.
신고 직후 수색이 시작됐지만,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주왕산은 울창한 숲과 계곡, 급경사로 이루어진 산이다. 어두워진 뒤에는 사실상 사람 눈으로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 왜 하필 휴대전화가 없었을까
이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휴대전화 없이.” 처음 보도에서는 강 군이 산에 오르면서 부모에게 폰을 맡겼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는 달랐다. 대구 집에서부터 아예 안 가져온 것이었다.
11살짜리가 폰 없이 산에 간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가족 나들이에 아이가 폰을 꼭 챙기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바로 이 한 가지가 수색의 모든 걸 바꿔놨다. 위치 추적 불가. 통화 불가. 수색대가 아무리 많아도 "네가 어디 있느냐"를 물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강 군이 발견된 지점은 휴대전화가 있었어도 통화가 안 되는 곳이었다. 민간수색대 관계자는 "거기는 폰이 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폰이 있었다 해도 결과가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출발 전 위치 기록이라도 남았다면 수색 방향이 좁혀졌을 가능성은 있다.
► “아이 눈에는 길처럼 보였을 것이다”
수색 3일째인 5월 12일 오전 10시 13분. 경찰 과학수사대 소속 수색견이 강 군을 찾아냈다. 주봉 인근 등산로에서 400m 떨어진 협곡. 정식 탐방로가 아니라 샛길도 없는 곳이었다. 해발 660m, 경사 50~60도. 나무와 바위가 뒤엉킨 급경사 비탈면 아래, 계곡의 평평한 바위 위에 누워 있었다.
→ 혹시 모를 산행에 대비해서, 등산 전 꼭 알아야 할 안전 체크리스트 ∥ 가족 단위 산행 시 준비물과 주의사항 정리
국립공원 관계자는 말했다.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를 갖지 않으면 일반 탐방객은 들어가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왜 아이는 거기 있었을까.
경찰 추정은 이렇다. 강 군은 주봉까지 올라간 뒤, 원래 왔던 길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칼등고개 방향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샛길로 빠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증언이 나온다. 강 군이 발견된 곳 근처는 주민들 사이에서 '다래밭골’로 불리는 계곡이다. 정식 길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송이를 따러 드나들던 길이 있었다. 과거에도 추락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주민 최영학(66) 씨가 했던 말이 이 사건의 핵심을 찌른다. “정식 길은 아니지만, 아이 눈에는 길처럼 보였을 것이다.”
민간산악구조대 관계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샛길 입구 일부 구간은 울타리가 끊겨 있어서 탐방객이 착각할 수 있는 상태였다.” 성인이라면 “이건 아닌데” 하고 돌아설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11살에게 그 판단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 작년에도 왔는데, 왜 올해는 못 돌아왔나
부모의 진술에 따르면 강 군은 작년에도 이 코스를 왔다. 하지만 그때는 힘들어서 중간에 하산했다. 즉 주봉 정상까지 완등한 적이 없었다.
여기서 관계가 꼬인다. 부모는 "한번 가본 길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실제로 완주한 적은 없었다. 가 봤다는 것과 끝까지 갔다 왔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특히 산에서는.
→ 아이의 체력과 판단력을 과신하는 건 위험하다. 어린이 야외활동 시 부모가 놓치기 쉬운 안전 요소 ∥ 나들이철 사고 사례와 예방 포인트
강 군의 체형도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키 145cm, 마른 체형. 기암교에서 주봉까지 2.3km, 성인 기준 1시간 20분 거리다. 평균 경사도 22.3%. 비교적 가파르지만 성인에게는 무난한 편이다. 그런데 마른 체형의 11살에게 이 거리와 경사는 다르게 작용한다.
경찰은 강 군이 주봉을 완등한 뒤 체력이 떨어지면서 제대로 길을 못 찾았을 가능성도 보고 있다. 올라갈 때는 되는데 내려올 때 힘이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산에서 가장 사고가 많은 구간이 하산길인 이유도 그거다.
► 수색 350명이 3일이나 걸린 이유
사흘간 투입된 수색 인력은 경찰, 소방, 국립공원공단, 민간구조대 합쳐 347명. 헬기 3대, 장비 58대, 구조견 19마리, 드론 6대. 이 정도면 웬만한 산은 뒤집을 수 있다.
그런데 못 찾았다. 이틀 동안.
이유는 단순했다. 수색 범위가 ‘정규 탐방로’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첫날과 둘째 날, 당국은 기암교에서 주봉까지 이어지는 2.3km 등산로를 집중적으로 뒤졌다. 강 군이 탐방로를 벗어났을 거라는 가정은 나중에야 적용됐다.
청송경찰서장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종 당일부터 이틀간 정식 탐방로를 중심으로 수색을 진행했다. 등산로에서 한참 떨어진 계곡 아래에 있어 조기 발견이 어려웠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렇다. 사라진 사람이 길 위에 있을 거라고 전제했던 거다. 하지만 길을 잃은 사람이 길 위에 있을 리가 없다. 특히 아이는. 수색의 전제 자체가 3일째가 되어서야 수정된 셈이다.
► 1차 검시 결과, 그리고 남은 질문들
시신은 12일 오후 4시 24분에야 수습됐다. 산악용 들것으로 직접 내려와야 했다. 오후에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려 헬기 이송도 중단됐었다.
13일 발표된 1차 검시 결과는 "추락에 의한 손상"이었다. 다리 골절 등 낙상에 의한 신체 손상 소견이 확인됐다. 다만 눈에 보이는 큰 외상이나 외부 출혈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검찰은 추가 사인 확인을 위해 부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산행 중 저체온증이나 탈진이 오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궁금하다면, 저체온증 초기 증상과 응급 대처법 ∥ 봄·가을 산행에서도 발생한다
범죄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CCTV와 블랙박스 분석을 마쳤고, 주변에서 제3자의 개입 흔적은 없었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만 보면 강 군이 등산로를 벗어나 급경사 지형에서 실족한 사고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직 답이 안 나온 게 있다. 왜 정규 탐방로를 벗어났는지. 주봉에서 얼마나 더 이동했는지.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는 건 추락 직후였는지, 아니면 이동하다가 탈진한 뒤였는지. 저체온증 가능성도 아직 배제되지 않았다. 5월이라고 산 위가 따뜻한 건 아니다. 밤이 되면 해발 600m 이상은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 파란 유니폼과 끝나지 않은 추모
강 군은 삼성 라이온즈 팬이었다. 실종 당시 입고 있던 건 이재현 선수 유니폼이었다. 파란색 모자에 파란색 운동화.
소식이 전해지자 삼성 라이온즈 구단이 먼저 움직였다. 공식 계정에 "갑작스러운 비보에 깊은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는 글을 올렸다. 선수단과 임직원 명의였다.
팬들 사이에서도 추모가 번졌다. “삼성 유니폼 입었던 어린 친구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 글 하나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팬들은 이 아이를 '삼린이’라 불렀다. 삼성 팬 어린이라는 뜻이다.
좋아하는 팀 유니폼 입고 가족이랑 산에 간 토요일. 그게 그 아이의 마지막 나들이가 됐다. 이걸 데이터나 통계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냥 가슴이 아픈 거다.
► 울타리가 끊긴 자리, 그 빈 공간이 남긴 것
이 사건에서 하나 더 봐야 할 게 있다. 강 군이 들어간 샛길 입구에는 울타리가 끊겨 있었다. 민간구조대가 확인한 내용이다. 정규 탐방로와 비정규 구간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 측은 "탐방로 외 지역 출입을 막기 위해 안내판 등을 설치해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안내판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하다. 11살이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안내판을 읽고 판단할 여유가 있었을까.
탐방로 순찰 근무는 2인 1조로 운영된다. 사고 당일에도 거점 근무 중이었다. 하지만 순찰 경로와 강 군의 이동 경로가 겹치지 않아서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이지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겹치지 않았다"는 말 자체가, 혼자 산에 오른 아이를 시스템이 감지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 사건이 남기는 한 가지
현장에서 사흘을 뜬눈으로 지새운 부모는 사망 소식을 듣고 무너졌다. 어머니는 경찰 설명을 듣다가 고개를 숙인 채 10여 분 동안 오열했다. 아버지가 산에서 내려오자 다시 울음이 터졌다. 주변의 구조대원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하늘만 바라봤다.
“조금만 더 빨리 발견됐으면…” 수색대 사이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이 사건에서 누군가 하나만 달라졌어도, 결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폰을 가져갔더라면. 혼자 보내지 않았더라면. 울타리가 이어져 있었더라면. 수색 첫날부터 탐방로 바깥까지 범위를 잡았더라면.
그런데 이건 다 "~더라면"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하나다. 11살 아이가 토요일 낮에 산에 올랐고, 월요일 아침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이야기가 불편한 이유는 특별한 악인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도 아이를 사랑했고, 수색대도 밤을 새웠고, 국립공원도 운영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그런데 아이는 죽었다. 시스템의 빈틈은 항상 “괜찮겠지” 사이에 숨어 있다.
빈소는 대구에 마련될 예정이다.
Q&A
Q1. 주왕산 실종 초등생은 왜 혼자 산에 올랐나?
강 군은 가족과 함께 대전사를 방문한 뒤 "조금만 올라갔다 오겠다"며 홀로 주봉 방향으로 출발했다. 작년에도 같은 코스를 가족과 왔던 경험이 있어 부모가 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Q2. 실종 후 발견까지 왜 3일이나 걸렸나?
강 군이 정규 탐방로에서 400m나 떨어진 비정규 구간에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수색이 정규 등산로 중심으로 이루어져 탐방로 바깥까지 범위가 확대된 건 3일째였다.
Q3. 사망 원인은 뭔가?
1차 검시 결과 "추락에 의한 손상"으로, 다리 골절 등 낙상 소견이 나왔다. 범죄 정황은 없으며, 추가 부검 여부는 검찰이 결정할 예정이다.
Q4. 휴대전화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발견 지점은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다만 출발 전 위치 기록이 남았다면 수색 범위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됐을 가능성은 있다.
Q5. 주왕산 주봉 코스는 어린이에게 위험한가?
기암교에서 주봉까지 2.3km, 평균 경사 22.3%로 성인에게도 쉽지 않은 편이다. 폭이 좁고 바위가 미끄러운 구간이 많아 어린이 단독 산행은 권장되지 않는다.
참고자료
- 주왕산 간 11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이틀만에 숨진 채 발견(종합2보) — 연합뉴스 ∥ 실종부터 발견까지 타임라인이 가장 상세하게 정리된 기사
- 끝내 주왕산서 돌아오지 못한 초등생···급경사 협곡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경향신문 ∥ 발견 지점의 지형과 현장 상황을 직접 취재한 기사
- 주왕산 초등생 사고 지점 인근 일부 탐방로 울타리 없어 — 연합뉴스 ∥ 울타리 미설치 구간과 탐방로 안전 문제를 다룬 기사
- 밤새 산 지킨 실종 초등생 부모…끝내 아들 잃고 무너졌다 — 연합뉴스 ∥ 현장에서 3일을 보낸 가족과 수색대의 기록
- 주왕산 실종 초등생 1차 검시 결과 골절 등 추락에 의한 손상 — 조선일보 ∥ 검시 결과와 부검 여부 결정 경과를 담은 최신 보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