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28살 여자가 13살 남자아이로 둔갑했다. 성별도 속이고 나이도 속였다. 넷플릭스 '소년심판’에서 백성우를 연기한 배우 이연 이야기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원래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펑키 재즈 보컬이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 한 곡 부르지도 못하고 눈물만 쏟고 내려온 적이 있다.
드럼 스틱 소리가 탁 탁 탁 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고 한다. 입도 못 떼고 그냥 무대를 내려왔다. 그 길로 휴학했다.
여기서 보통이면 끝이다. 근데 이 사람은 연기 치료를 받으러 갔다.
사방이 거울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웠지만 뛰어갔다. 발레 바를 잡자마자 욕을 쏟아냈다. 본인 표현으로 “진짜 엄청” 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저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다들 박수를 치고 있었다. “와아아” 하면서. 처음이었다고 한다, 누구 앞에서 그렇게 운 게. 그날 하나를 알았다. 울어도 되는구나. 감정을 꺼내놔도 되는구나.
이게 이연이라는 배우의 시작점이다. 완벽주의에 짓눌려서 관객의 속삭임마저 전부 자기 욕으로 들리던 사람이, 감정을 터뜨리는 법을 배우고 나서 그걸 직업으로 삼았다.
여기서 보통이면 끝이다. 근데 이 사람은 연기 치료를 받으러 갔다.
연기 치료 첫날, 발레 바를 잡고 엉엉 울었다는데
무대공포증을 고치러 간 거였다. 배우가 되려고 간 게 아니었다. 첫날 연습실에 들어가자마자 발레 바를 옥상 난간이라 생각하고 뛰어가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소리치라는 과제를 받았다.사방이 거울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웠지만 뛰어갔다. 발레 바를 잡자마자 욕을 쏟아냈다. 본인 표현으로 “진짜 엄청” 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저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다들 박수를 치고 있었다. “와아아” 하면서. 처음이었다고 한다, 누구 앞에서 그렇게 운 게. 그날 하나를 알았다. 울어도 되는구나. 감정을 꺼내놔도 되는구나.
이게 이연이라는 배우의 시작점이다. 완벽주의에 짓눌려서 관객의 속삭임마저 전부 자기 욕으로 들리던 사람이, 감정을 터뜨리는 법을 배우고 나서 그걸 직업으로 삼았다.
음악을 할 때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처럼 무대에 서 있었는데, 연기를 하면서 수분을 머금게 됐다고 본인이 직접 말했다.
엄마와의 유일한 데이트가 영화관이었다
이연은 어머니와만 살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전참시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눈물을 보였다. “엄마가 워킹맘이라 주말마다 함께 영화관에 갔다. 그게 엄마와 유일한 데이트였다.”그중 하나가 영화 '애자’였다. 최강희가 나온 영화인데 엄마와 딸 이야기다. 이연은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저렇게 연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연기적 지향점이 '애자’였다고.
여기서 한 가지가 연결된다. 어린 시절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감정을 억누르던 아이가, 무대 위에서 터져버렸고, 연기 치료에서 비로소 풀렸고, 결국 감정을 직업으로 다루는 사람이 됐다. 이연의 연기가 날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기를 배운 게 아니라 감정을 꺼내는 법을 배운 거니까.
삭발하고 갔더니 “남자 역할이다”
소년심판 캐스팅 과정이 좀 황당하다. 이연은 당시 승려 이전 단계인 행자님 역할을 준비하면서 머리를 밀었다. 삭발 상태에서 우연히 소년심판 대본을 받게 됐다.연락이 왔는데 "네가 와서 확인을 해줘야 할 것 같다, 역할이 남자다"라고 했단다. 이연이 물었다. “여장 남자라는 거예요? 남장 여자라는 거예요?” 28살 여배우한테 13살 남중생을 하라는 건데 보통은 거절할 만하다.
감독이 "여배우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처음이라 조심스럽다,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에 하겠다고 했다. 결과는 시청자들이 진짜 남학생인 줄 알았다는 폭발적 반응이었다. 성별도 나이도 완전히 속여버린 거다.
이 사람의 경력을 보면 좀 독특하다. 소년심판에서 13세 소년범, 길복순에서 킬러 훈련생, 약한영웅에서 또 다른 결의 캐릭터. 선악도 성별도 나이도 경계가 없다. 절해고도에서 어린 스님을 연기했을 때 김미영 감독이 남긴 말이 정확하다. “엄숙하지 않더라.”
아이유가 장례식장에서 울었을 때 달려간 두 명 중 한 명
이연이 지금 출연 중인 드라마가 MBC '21세기 대군부인’이다. 아이유의 비서 도혜정 역할.설날에 아이유가 직접 떡국을 끓여줬고, 아침마다 사과를 깎아놨다. 근데 아이유가 새벽에 미리 일어나서 사과를 깎아 세팅해놓고 다시 자러 들어갔기 때문에, 이연이 2시간 뒤에 일어나서 먹을 때쯤이면 사과가 갈변해 있었다고 한다.
둘이 친해진 건 촬영장에서였다. 차 내부 씬이 많았는데 카메라 세팅하는 동안 차 안에 둘만 남겨져 있어야 했다. 이연이 먼저 말을 걸었다. 촬영이 길어지면서 서로 텐션이 떨어지니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게 일상으로 번졌다.
근데 진짜 이 관계의 무게가 느껴지는 건 따로 있다. 아이유가 외조부상을 당했을 때 장례식장에 온 친구가 딱 두 명이었다. 유수빈과 이연. 아이유가 직접 말했다. “내 친구 중에는 유일하게 두 사람이 와줬다. 한걸음에 와줘서 너무 감동받았다.” 부모님도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했다고.
둘 다 초콜릿을 들고 왔다. 유수빈은 맛별로 초콜릿을 담아왔고, 이연도 이어서 초콜릿을 가져왔다. 상주들이 아침에 피곤할 때 딱 필요한 거였다고 한다.
아이유 정도 되는 사람의 장례식장에 친구가 두 명밖에 안 온다는 게 좀 의외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이 관계가 진짜라는 걸 보여준다. 연예계에서 "친하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다들 알지 않나.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이 진짜다.
드라마에서 운전 잘하던 사람이 면허가 없다
전참시에서 나온 반전 중 하나. 이연은 21세기 대군부인에서 아이유를 태우고 운전하는 장면이 꽤 나온다. 능숙해 보였다. 근데 실제로는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면허 갱신을 해야 하는 걸 몰랐다고 한다. 아무도 안 알려줬다고. 본인 표현으로 “멍청 비용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버스를 타고 다닌다. 드라마 속 운전 장면은 전부 세트장에서 CG로 처리한 거였다.
이게 웃긴 이유가 있다. 이 사람은 드라마에서 성별도 속이고 나이도 속이고 운전 실력까지 속였다. 속이는 게 직업이긴 한데, 일상에서도 이렇게까지 반전이 있을 줄은.
경주기행, 올 하반기에 터질 영화
이연의 다음 카드가 하나 더 있다. 영화 '경주기행’이다.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과 함께 네 모녀를 연기한다. 막내딸을 잃은 엄마가 가해자가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세 딸과 함께 경주로 복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이미 하와이 국제영화제와 피렌체 한국영화제에 초청됐다. 피렌체에서는 관객상까지 받았다. 아직 국내 개봉 전인데 해외에서 먼저 터진 거다.
이연이 GQ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한 말이 있다. “경주기행에서 만난 세 분의 선배님과의 카톡방이 지금도 활발하다.” 작품마다 최소 한 명씩 인연을 얻어간다고 했다.
나이 들수록 새 인연을 만들기 어려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이 사람은 일을 통해 그걸 계속 해내고 있다.
이연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들통날 짓은 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아니니까. 내 옷이 아니니까.” 평소에도 등산 가고 백반집 가고 버스 타고 다닌다. 배우는 고립되면 안 된다는 게 본인의 연기 철학이라고 했다.
“나중에 아무리 유명해진다고 해도 여행도 다니고 걸어 다니고 즐길 거 즐기고, 그냥 사람처럼 사는 걸 계속할 거다.”
무대공포증으로 부러졌던 사람이 연기 치료에서 다시 붙었고, 엄마와 영화관에서 꿈꿨던 걸 직업으로 만들었고, 삭발한 채로 받은 대본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다. 삶의 전환점이 어디서 올지 모른다는 건 이런 이야기를 보면 좀 실감이 난다.
결국 말하고 싶은 건 하나다
이연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들통날 짓은 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아니니까. 내 옷이 아니니까.” 평소에도 등산 가고 백반집 가고 버스 타고 다닌다. 배우는 고립되면 안 된다는 게 본인의 연기 철학이라고 했다.
“나중에 아무리 유명해진다고 해도 여행도 다니고 걸어 다니고 즐길 거 즐기고, 그냥 사람처럼 사는 걸 계속할 거다.”
무대공포증으로 부러졌던 사람이 연기 치료에서 다시 붙었고, 엄마와 영화관에서 꿈꿨던 걸 직업으로 만들었고, 삭발한 채로 받은 대본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다. 삶의 전환점이 어디서 올지 모른다는 건 이런 이야기를 보면 좀 실감이 난다.
아이유는 이연을 "저만의 작은 악마"라고 부른다. 변우석은 "눈으로 대답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촬영 초반에는 장난기가 없던 사람이 끝날 즈음에는 아이유 손을 물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 옆에서 풀리는 과정이 그대로 보인다.
이 사람의 핵심은 결국 이거다. 감정을 억누르던 시절에는 부러졌고, 꺼내기 시작하면서 살아났다. 그리고 그 감정을 직업으로 만들었더니 주변에 사람이 모였다. 연기력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은 감정을 꺼내는 것 자체가 삶의 방식이 된 거다.
미워하는 사람들보다 응원해주는 사람이 더 많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 흐름을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Q&A
Q1. 이연이 배우가 된 계기는?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이었으나 무대공포증이 심해져 연기 치료를 받았고, 첫날 감정이 폭발하면서 연기에 재미를 느껴 배우의 길로 전향했다.Q2. 소년심판에서 남학생 역할은 어떻게 맡게 됐나?
다른 작품을 위해 삭발한 상태에서 우연히 대본을 받았고, 감독의 진심 어린 제안에 출연을 결심했다. 당시 28세였지만 13세 소년범을 완벽히 소화했다.Q3. 아이유와 이연의 관계는?
21세기 대군부인 촬영을 계기로 가까워졌고, 아이유 집에 전용 잠옷이 있을 정도로 친하다. 아이유 외조부상 때 장례식장에 달려간 친구 두 명 중 한 명이다.Q4. 이연의 다음 작품은?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과 출연한 영화 '경주기행’이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이미 해외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Q5. 이연이 면허 취소된 이유는?
음주운전 같은 게 아니라 면허 갱신 기간을 놓쳐서 자동 취소됐다. 드라마 속 운전 장면은 전부 CG였다.참고자료
- GQ Korea 이연 인터뷰 전문 - 무대공포증부터 배우 철학까지 본인 입으로 한 가장 긴 인터뷰
- 노컷뉴스 이연 전참시 가정사 고백 - 어머니와의 추억과 연기 시작 계기를 직접 말한 방송 정리
- 중앙일보 아이유 외조부상 유수빈 이연 - 아이유가 장례식장 이야기를 직접 꺼낸 나혼자 산다 방송 기사
- 마이데일리 소년심판 캐스팅 비하인드 - 삭발 상태에서 남학생 역할 제안받은 과정 상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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